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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지명의 유래

D DX관리자
2026.09.30 20:17 7 0

 

서교동 지명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

서울 마포구의 서교동(西橋洞)은 오늘날 홍대거리와 함께 널리 알려진 지명이다. 그러나 현재의 서교동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사용된 이름이 아니다. 이 지역의 지명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세교(細橋)’와 ‘잔다리’라는 옛 지명에서 출발하며, 이후 동세교리와 서세교리, 서교정 등의 명칭을 거쳐 오늘날의 서교동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서교동의 지명 유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거꾸로 올라가기보다, 이 지역에 존재했던 옛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교동이라는 이름의 가장 직접적인 유래는 한자로 쓰인 ‘西橋’, 즉 ‘서쪽의 다리’라는 뜻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마포구 서교동의 동명 유래에 대해 “세교(細橋), 즉 ‘잔다리’가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으며, 1895년에는 한성부 북서 연희방 성외 지역의 세교1계 세교동과 세교2계 세교동·궁동 등에 속해 있었다. 즉 오늘날의 서교동이라는 이름보다 앞서 이 지역에는 ‘세교’라는 지명이 존재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잔다리’라는 옛 지명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의 홍대앞 관련 자료에서도 조선시대 이 지역에 ‘송정내’라고 불린 작은 개천이 있었고, 이 개천을 건너기 위해 놓인 돌다리를 ‘잔다리’라고 불렀으며 한자로는 ‘세교(細橋)’라고 했다는 지역사 자료가 소개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잔다리는 하나의 추상적인 이름이 아니라 실제 지역의 지형과 교통환경에서 비롯된 지명이었다. 당시 이 일대는 지금처럼 상업시설이 밀집한 지역이 아니라 한양 도성 밖의 농촌 지역이었으며, 작은 개천과 이를 건너는 다리가 지역을 구분하는 중요한 지형적 기준이었다.
 

‘세교(細橋)’라는 한자 표기는 이 지명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細’는 가늘다 또는 작다는 뜻이고 ‘橋’는 다리를 의미하므로, 세교는 문자 그대로 작은 다리를 뜻한다. 옛말인 ‘잔다리’와 한자식 표현인 ‘세교’가 함께 사용되면서 이 일대의 지명으로 정착한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을 인용한 자료에서도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일대의 옛 지명이 ‘잔다리’였으며, 한강으로 가는 과정에서 건너야 했던 작은 다리를 잔다리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세교라고 표기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이 지역은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면서 동교와 서교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서교’라는 이름을 단순히 ‘서쪽에 있는 다리’라고만 이해하면 지명의 형성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보다 정확한 과정은 ‘잔다리’라는 실제 지형 명칭이 있었고, 이것을 한자로 ‘세교(細橋)’라고 표기했으며, 이후 이 일대가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되면서 ‘동세교’와 ‘서세교’라는 명칭이 나타나고, 이것이 다시 ‘동교’와 ‘서교’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서교동이라는 이름에는 과거 이 지역의 하천과 다리라는 자연·교통 환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이 지역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해 있었다. 성저십리는 한양도성 밖의 일정한 범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마포 일대 역시 한성부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1895년 행정구역 기록에서는 현재 서교동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성부 북서 연희방 성외의 세교1계와 세교2계 등에 속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서교동’이라는 법정동 명칭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세교동’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고 있었다.
 

근대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이 지명은 다시 변화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14년에는 이 지역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의 ‘서세교리(西細橋里)’가 되었다. 여기서 ‘서세교’라는 이름은 앞서 설명한 세교라는 옛 지명에 ‘서쪽’을 구분하는 의미가 더해진 형태다. 같은 시기 동쪽 지역은 동세교리로 구분되었다. 이 시기의 명칭은 현재의 동교동과 서교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936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세교리가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서교정(西橋町)’이라는 일본식 행정명칭으로 바뀌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자료에는 경성부의 ‘서교정’이 연희면 서세교리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구역으로 명시되어 있다. 같은 자료에는 ‘동교정’이 연희면 동세교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서교라는 명칭은 해방 이후 갑자기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라 1936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공식 행정명칭으로 이미 등장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일본식 지명이 정리되면서 ‘정(町)’이라는 명칭은 우리식 동명으로 바뀌었다. 1946년에는 서교정이 ‘서교동’으로 변경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43년 서대문구에 소속되었던 서교정이 1944년 마포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마포구 서교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서교동’이라는 명칭이 행정동명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만 현재의 서교동과 동교동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구역의 변화 과정에서는 ‘세교’라는 하나의 지역이 여러 차례 분할·조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70년에는 당시의 세교동이 서교동과 합정동으로 분리·통합 또는 명칭 변경되었으며, 이후 행정구역 조정 과정에서 서교동의 일부가 다시 동교동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서교동과 동교동을 이해하려면 옛 세교 지역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다는 점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의 홍대앞 역사 자료에서도 동교동과 서교동의 지명 형성과정을 잔다리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서는 잔다리가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되면서 오늘날의 동교동과 서교동으로 이어졌다는 지역사적 설명이 소개된다. 다만 행정구역상 분리 시점과 명칭 변화는 별도의 행정자료로 확인해야 하며, 구전이나 주민의 기억만으로 행정연혁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 행정구역의 변천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행정연혁과 대조할 필요가 있다.
 

서교동의 지명을 이해할 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다리’가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옛 마을의 지명을 만드는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도로와 건물이 도시 공간을 구분하지만, 과거에는 하천과 고개, 나루, 다리와 같은 지형적 요소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구분하고 이동하는 기준이 되었다. 서교동의 경우에도 작은 개천과 그 위에 놓인 작은 돌다리가 지역의 이름을 만들어냈고, 그 이름이 세교라는 한자 지명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그 지명이 서세교리와 서교정, 서교동으로 변화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서교동’이라는 이름을 홍대의 역사와 직접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홍익대학교와 현재의 홍대 상권은 서교동의 현대적인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서교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자료가 보여주듯 홍대앞이라는 현대적인 공간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곳에는 이미 세교와 잔다리라는 오래된 지명이 존재했다. 홍대 문화권은 훨씬 뒤의 도시 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서교동이라는 이름 자체는 그보다 앞선 지형과 마을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현재 서교동이라는 이름에서 ‘교(橋)’라는 글자가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지금 서교동을 걸어 다니면서 옛 다리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지명에는 과거의 공간이 남아 있다. 실제 다리가 사라지고 하천의 모습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바뀌었어도 그곳을 가리키던 이름은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살아남았다. 지명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과거의 지형과 생활환경을 기억하는 일종의 역사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교동의 지명 유래를 가장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지역에는 과거 작은 개천이 있었고 그 개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주민들은 그 다리를 ‘잔다리’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세교(細橋)’라고 표기했다. 세교라는 지명이 지역명으로 사용되면서 세교동이라는 명칭이 나타났고, 이후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면서 동세교리와 서세교리라는 이름으로 발전하였다. 서세교리는 1936년 경성부의 서교정이 되었고, 해방 이후인 1946년 서교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의 서교동은 이러한 지명 변천의 결과다.
 

따라서 서교동(西橋洞)은 단순히 ‘서쪽에 있는 다리’라는 의미의 현대적인 이름으로 만들어진 지명이 아니다. 그 뿌리에는 ‘잔다리’라는 옛 이름과 ‘세교(細橋)’라는 한자 지명이 있고, 그 지명이 조선시대의 세교동에서 근대의 서세교리와 서교정을 거쳐 현재의 서교동으로 이어진 역사적 과정이 있다. 오늘날 홍대거리와 수많은 상업시설이 들어선 서교동의 모습은 매우 현대적이지만, 그 이름만큼은 작은 개천과 돌다리가 있던 한양 근교의 옛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지명을 오래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건물은 사라지고 도로는 바뀌며 하천은 복개될 수 있지만, 한번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지명은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서교동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서교동’이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라, 잔다리와 세교라는 옛 지명에서 출발해 조선시대와 근대, 해방 이후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지역의 역사적 흔적이다.
 

서교동(西橋洞).

그 이름은 지금의 홍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작은 다리, ‘잔다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오래된 이름이 세교(細橋)가 되고, 서세교리가 되고, 서교정이 되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서교동이 되었다.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지명은 그 자리에 남아 과거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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